읽은 것

초가공식품

無樂 2024. 12. 23. 20:21

크리스 반 툴레켄 작, 김성훈 옮김

ULTRA-PROCESSED PEOPLE 2023년 출판

2024년 10월 5일 한국어판 발행

 

    사람의 생존에 필수적이고 불가결한 요소 세 가지를 일컬어 의식주라고 한다. 의식주를 세부적으로 분류하면 끝도 없지만 큰 얼개에서 인간은 이 세 가지를 충족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고 투쟁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명은 의식주를 원활하게 해결하기 위해 시작되었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과정과 방법은 문화가 되었다. 의식주는 다 중요하지만 셋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지 꼽는다면 단연코 ‘식’이다. 무언가를 먹는 것은 내 몸을 구성하고 이용할 물질과 에너지를 외부에서 취하는 행위이며 의식주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 즉 평생에 걸쳐 개인과 집단의 건강과 삶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에 식품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을 수밖에 없다.

 

    음식은 단순한 문화의 범주를 넘어서 과학의 분석대상이 되었고 그 덕분에 식품의 성분과 가공에 대한 엄청난 지식을 쌓을 수 있었고 이는 식품산업이 대규모로 성장하는 도구가 되었으나 이제 역으로 식품에 들어간 성분이 무엇이고 인간한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되었다. 이에 대한 해답이 요 십수년 사이에 연구로 나오고 출판되어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는 것 같다. 현대의 식품산업은 오래되고 잘 알려진 것조차도 경악스럽기 그지 없으며 알면 알수록 이상하고 기괴하다. 식품에 대해 관심을 갖고 관련 자료와 책을 찾아 읽다 보니 가공식품은 식품보다는 공산품에 가까워 보여서 온갖 가공식품들로 점철된 현대의 식문화를 산업식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가공식품만을 다루는 가공식품 영양학을 따로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 후 이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제 나와 비슷한 의문과 생각을 한 연구자가 이를 파헤치고 연구해서 마침내 책으로 엮어 나왔는데 심지어 가공식품이 아니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서 초가공식품이란 제목이 달리게 되었다. 식품공학의 기술 발전은 놀랍도록 빠르고 눈이 부셔서 가공식품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듯하다. 가공에 가공을 더해야만 치열한 경쟁을 뚫고 팔리는 실정이 된 것이다. 먹거리가 아닌 식용제품이 식탁을 채운 결과가 어떤지는 보지 않아도 짐작은 되겠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차근차근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이 오랜 의문에 대한 완벽한 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답을 찾는 과정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인간의 7대 죄악 중에서 6개가 자신이나 타인을 대상으로 한 죄악이라면 폭식의 대상은 드물게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유일하게 인간이 아닌 음식이다. 폭식 혹은 탐식은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건전한 죄악이라고 하지만 식품산업계가 저지르는 온갖 범죄를 알고 나면 폭식이야말로 가장 거대한 죄악이 아닌가 하는 고민도 하게 된다. 너무 멀리 나간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인간이 식을 해결하기 위해 벌인 일이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대멸종을 부추기며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다. 결국 현 시스템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책의 말미에 적시하고 있다. 먹거리에 대한 철학의 부재가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로 오고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에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에 대한 자각이 없으면 결국 인간은 이 책에서 규정하는 식용제품에 중독되어 왜 비만과 질병에 시달리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책으로 식품회사들이 바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소비자가 요구하면 결국 회사도 그에 맞춰 바뀔 수밖에 없다. 회사들이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만큼 시민들은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치열하게 투쟁할 수밖에 없지만 이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 해결법을 모색하다보면 어느새 답에 도달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길지 않는 감상문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