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34건

  1. 2025.04.09
  2. 2025.02.20
  3. 2025.02.12
  4. 2025.02.03
  5. 2025.01.29

산소와 그 경쟁자들(김홍표 저) p252~259 중에서

 

 

과당 대사와 포도당: 가장 안정한 것이 가장 안전한 것

 

화학적으로 어떤 당보다 안정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포도당이 생명의 기본 물질로 자라 잡았을 것으로 본다. 과당은 과일에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을 얻었다. 포도당과 관련해서, 과당은 매우 재미있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바로 포도당 인산화효소(glucokinase) 활성을 증강시키는 과당의 역할 때문이다. 이 효소는 포도당 말고는 관심이 없지만, 포도당 대사 산물인 인산 포도당은 과당의 대사를 개시하는 데 필요하다. 따라서 과당과 포도당은 서로의 물질대사를 돕는다. 과당의 대사 효소인 과당 인산화효소는 오직 간과 정자에서만 많은 양이 발견된다. 이들은 대사 조절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과당이 간으로 들어오게 되면, 이 당은 바로 흡수되고 재빨리 대사된다. 반면 포도당이나 유당을 포함하는 탄수화물 대사는 엄격한 관리를 받는다. 세포는 에너지를 보존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과당이 간에서 해당 과정을 거친 다음에는 지방산 형태로 간에 저장된다. 이러한 성질 때문에 과당이나 설탕은 지방의 합성을 촉진한다. 설탕을 많이 섭취하면 혈중 트리글리세라이드의 농도가 올라간다. 설탕의 소비는 혈중 지질 농도 밑 동맥경화와 정비례 관계다. 농업이 시작된 1만 년 전부터 전분은 주요한 에너지원이었다. 전문은 포도당이 포도처럼 줄줄이 연결된 다당류다. 과당은 과일이나 꿀에 소량 포함되어 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인간이 섭취하면 포도당에 비해 과당의 양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다. 사과(5~7%의 과당을 함유하고 있다)와 밀, 감자 혹은 옥수수를 먹었다면 이때 과당은 포도당의 대사를 개시하는 신호 물질처럼 기능할 수 있다. 식물이 동물과 오랜 관계를 맺어 온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식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전략을 선택했을 때, 이미 동물 운반자들의 약점을 알고 서로 동맹 관계를 맺은 것 같다. 포도당은 확실히 포유동물의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소량의 과당은 포도당의 섭취와 대사를 촉진시킨다.

과당의 섭취는 증가일로에 있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전후무후한 일이다. 최근 100년 동안의 인간사를 돌아보면 거의 대부분이 최초라는 명칭을 달 만하다. 최초의 전기, 최초의 자동차, 그리고 최초의 음식. 너무 빠른 변화는 우리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과당을 운반하는 단백질은 GLUT5와 GLUT2로 알려져 있다. 인체에서 이들 단백질의 발현은 대체로 낮다. 이들이 장내 세균에 어떤 영향을 미치든 아니면 간 조직에서 과도하게 지방을 축적하든, 우리에게는 어쩐지 낯선 일들일 뿐이다.

 

 

과당: 죽음의 단맛

 

과당은 단당류이고 우리 신체에서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수 있다. 과일에도 있고 옥수수나 꿀 등에도 많다. 과일을 통째로 먹을 때, 실제 그 안에 들어 있는 과당의 양은 많지 않고, 신체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 과당은 매우 천천히 흡수된다. 또한 음식물을 먹을 때 같이 섭취하는 섬유나 다른 항산화제는, 설사 과당이 나쁜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중화할 수 있다. 문제는 정제로 고농도의 과당을 지속적으로 섭취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과당은 당도가 매우 높고, 또한 설탕처럼 혈당을 높이지 않기 때문에 한동안 최선의 감미료로 여겨졌다.

과일이나 채소에 들어있는 소량의 과당은 포도당의 대사를 돕는다. 근육과 간에서 과당의 대사는 서로 다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생활에서 인간이 섭취하는 과당의 양은 매우 적었지만, 현대인의 식품에는 약 10%가 과당이다. 고과당 옥수수 시럽(high fructose corn syrup)은 55%가 과당이고 나머지는 45%는 포도당이다. 설탕은 과당과 포도당이 각각 반이다. 과당은 매우 싸고 양도 많다.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거대화한 미국의 옥수수 산업이 과당의 가격을 매우 저렴하게 만들었고, 그 때문에 음식물 속에 들어온 과당의 양도 늘어났다. 과당은 그것이 어디에서 유래하든 체내에서의 동태는 똑같다. 토마토 1개에는 약 1그램의 과당이 있지만, 보통 크기의 병에 담긴 콜라에는 23그램이 들어있다. 큰 명에는 62그램 정도의 과당이 포함되어 있다.

모든 생명체의 물질대사의 기본은 포도당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의 뇌는 포도당만을 에너지원으로 쓴다.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의 일부는 글리코겐의 형태로 간이나 근육에 저장된다. 글리코겐은 에너지를 단기간 저장하는 이상적인 형태다. 쉽게 포도당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무독하기 때문이다. 알코올은 인간이 선호하는 탄수화물이지만 약간 독성이 있다. 이 알코올 화합물은 거의 전부가 간에서 대사되지만, 포도당과는 사뭇 다른 대사 경로를 거친다. 그렇지만 과당과는 대사 경로가 유사하다. 과당도 거의 전부가 간에서 대사가 이루어진다. 간에서 과당의 대사는 ATP를 소모하고 요산을 만든다. 의과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행된 실험 결과를 보면, 과량의 과당은 약 30%가 지방으로 변하는 반면, 포도당은 거의 지방으로 전환되지 않았다. 과당을 일주일 정도 계속해서 먹은 학생들은, 인슐린 저항성이 올라갔고 혈중 트리글리세라이드의 농도도 두 배 증가했다. 음식물을 충분히 섭취하면, 우리의 뇌는 먹는 것을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낸다. 과당은 뇌에서 오는 이 신호의 크기를 줄여서 음식물을 계속 먹게 한다.

비만 및 고혈압은 혈중 요산과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 육식이나 퓨린이 많은 식료품은 요산의 양을 늘린다. 요산을 올리는 또 다른 방법은 과당을 많이 먹는 것이다. 과당은 매우 신속하게 체내에서 요산으로 변한다. 뼈가 시리다는 통풍은 체내에 증가된 요산이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최근 들어, 혈압이 높고 비만하거나 신장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은 요산이 높을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반대로, 요산 수치를 낮추면 비만과 관련된 대사 질환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한다.

설탕을 많이 소비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700년대만 해도 인간은 1년에 평균 2킬로그램의 설탕을 소비했다. 1800년도에는 9킬로그램을, 1900년도에는 무려 45킬로그램이었다. 현재는 세계 인구의 25%가 넘는 사람들이 평균 95킬로그램의 설탕을, 말 그대로 입에 들이붓는다. 이런 설탕은 대개 과당이거나 과당이 많이 포함된 옥수수 시럽, 혹은 설탕이다. 현재, 전문가들은 하루에 25그램 이상의 과당을 섭취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1년에 9킬로그램이 넘는 양이다. 캔음료 1개에 이미 하루치 권고량 이상의 과당이 들어 있다. 포도당은 함께 섭취한 과당의 흡수를 증대시킨다. 요산의 수치를 높이는 일반적인 음료는 맥주다. 맥주를 자주 많이 먹는 사람에게 흔한 복부 비만은 대사질환 환자의 복부와 형태적으로 유사하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과당을 발효시켜 알코올을 만들어 소비해 왔다. 최근에 쏟아지고 있는 연구 결과는 과당과 알코올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있다. 대사의 측면, 쾌락을 유도한다는 점, 그리고 사회적 파급력 면에서 둘은 매우 닮았다. 과당과 에탄올은 대사되면서 지방산 합성의 재료로 사용된다. 만성적으로 이들 두 물질에 노출되면, 간은 염증을 동반하는 지질의 축적이 뚜렷해진다. 소위 말하는 지방간이 되는 것이다. 에탄올은 대사 과정을 거쳐 알데히드가 된다. 알데히드가 단백질에 무작위로 결합될 때, 과산소(superoxide)가 만들어진다. 일한 일은 과당이 단백질에 붙을 때도 일어난다. 과당도 뇌에 들어가면 알코올이 그러는 것처럼 습관성과 의존성을 키울 수 있다. 단맛을 추구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오랜 관심사이지만 근자에 들어와서 더욱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과당은 간에서 대사와 중추 신경계에서 에너지 신호 간 악순환을 불러온다. 뇌에서는 계속 먹으라는 신호가 오고, 간은 계속해서 지방을 축적한다.

요산의 수치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자료에 따르면, 1920년대에는 3.5ml/dl이었던 것이 198년대에 정확히 두 배로 늘었다. 요산의 증가가 과당의 소비와 직결된다는 논문이 최근 <<간장학>>에 실렸다. 과당의 소비는 신체의 물질대사와 에너지 균형을 깨뜨리고 간 손상을 초래한다. 간 조직 내부의 ATP양이 떨어지고, 이는 비알콜성 지방간과 관계가 있다는 내용이다.

요산은 사실 위험 신호라는 큰 카테고리에 속하는 물질이다. 세포가 죽으면 세포 속에 있던 물질이 밖으로 새어 나온다. DNA와 RNA도 예외는 아니어서 세포 밖으로 나와 분해되면 퓨린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좀 더 분해되면 요산이 된다. 대표적인 위험 신호는 ATP이다. ATP는 만들어지는 곳에서 멀리 가지 못하고 사용된다. 그러나 세포가 파괴되면, 즉시 주변으로 퍼지고 주위에 이는 세포는 이웃 세포들이 죽었다는 것을 인지한다. 위험 신호는 위험하지 않은 신호와 구분된다. 생체 내부의 물질도 경우에 따라 위험 신호가 된다. 세포나 유기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양이 존재하면, 그것은 즉시 위험하다는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다. 포도당이 많거나, 과당이 많거나, 요산이 많은 것, 모두 예외 없이 위험 신호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따로 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당은 복잡한 경로를 거쳐 요산으로 대사되고 이 과정에서 세포의 ATP를 빠르게 소진시켜 세포를 죽게 한다. 그러므로 과당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세포는 에너지가 적은 상태, 일종의 세포 쇼크 상태에 일로 죽는다. 한꺼번에 상당수의 세포가 죽으면, 앞에서 말한 대로 세포 내용물이 나온다. 위험 신호가 붉은 등을 켜는 것이다. 그러면 염증 세포가 이들을 해치우기 위해 활성화되고, 몸은 염증 상태가 된다.

 

과당+ATP -> 과당1P+ADP

ADP -> IMP -> 요산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의 이합체다. 이 두 종류의 당을 섭취하면 과당이 훨씬 빨리 흡수된다. 반면, 식이 섬유는 장에서 탄수화물의 흡수 속도를 늦출 수 있기 때문에 과당의 흡수 정도를 완화할 수 있다. 생체가 만드는 가스의 측면에서 보면, 요산은 일산화질소의 합성을 떨어뜨리고 혈관이 팽창되는 것을 억제한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양모과  (0) 2024.01.19
And

 

팀 파머 작, 박병철 옮김

THE PRIMACY DOUBT 2022년 출판

2024년 10월 21일 한국어판 발행

디플롯

 

 

카오스로 대표되는 복잡계과학은 놀라운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오는 분야인 것 같다. 이 분야에서 다루는 수학은 너무 어려워서 전문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 접근하기는 어렵지만 그 결과물을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풀어낸 교양서는 흥미롭기 그지없다. 이제 이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많아져서 그런지 괜찮은 교양서도 많이 나온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은 지금까지 읽은 복잡계과학 교양서 중에서 가장 재밌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보통 책을 읽기 전에 책에 간단하게 소개된 저자의 이력을 한번 훑고 서문은 건너뛰는 편인데 이 책은 옮긴이의 글부터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번역자는 전직 대학교수로 지금은 과학 분야의 서적을 집필하고 번역하고 있고 저자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의 지도하에 일반 상대성이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기후로 분야를 바꿔 앙상블 예측 시스템을 개발했다. 우리가 매일 보는 일기예보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한 본인이었다. 이론물리학자들은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주제로 우주를 연구한다고 생각했는데 특이하게 매일 우리가 보는 날씨를 연구해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 이유가 서문에 적혀 있다.

과학자의 연구는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서문에는 자신이 왜 분야를 바꾸었는지 마치 고백처럼 쓰여있다. 수학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뛰어난 물리학자가 일상적인 것을 연구하면 얼마나 대단하고 재밌는 성취가 나오는지를 보여준 것 같다.

어려운 것을 익히려면 어렵게 배워야 한다고 한다. 이 책도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 그래도 저자는 대단히 어려운 것을 조금 어려운 수준으로 풀이했다. 각 장은 개별적으로 구성되 있어서 어려운 부분은 건너뛰고 흥미로운 부분만 찾아 읽어도 된다.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통독하는게 제일 좋은 것 같다.

통계학이나 경제학, 복잡계과학 교양서라면 대부분 한번은 다루는 주제가 경제위기다. 경제위기를 다루는 그래프에 나오는 것이 바로 정규분포의 두꺼운 꼬리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게 한 통계학 책에서는 코셔분포라고 한 걸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서는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으면서 그래프에 길고 굵은 꼬리가 있으면 그 저번에는 비선형적 특성이 존재한다고 써놨다. 오랫동안 의문이었던 두꺼운 꼬리의 정체가 대체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린 순간이었다.

마찬가지로 복잡계과학 교양서를 읽다보면 반드시 나오는 법칙이 하나 있는데 이 책에도 역시 나온다. 80대 20법칙 혹은 파레토의 법칙으로 알려진 멱법칙인데 이 법칙은 한 수가 다른 수의 거듭제곱으로 표현되는 두 수의 함수적 관계이다. 멱법칙은 거의 모든 다중규모 시스템 즉 질병확산, 경제, 날씨, 우주 전체의 비선형적 특성을 설명해준다고 한다. 여러 서적에서 멱법칙은 하도 많이 나와서 그 중요성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확신이 든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공부하고 숙고해야 할 수학법칙이 바로 이 멱법칙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깨닫는 건 아주 어려운 사실들이 있는데 이 책이 바로 그 사실들을 다루고 있다. 만약 복잡계과학책을 딱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나는 다른 건 볼 것 없이 이 책을 선택하겠다.

'읽은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  (0) 2025.02.12
파견자들  (0) 2025.02.03
닉 레인의 저서들  (0) 2025.01.29
초가공식품  (2) 2024.12.23
알레르기의 시대  (2) 2024.07.22
And

마크 쿨란스키 작, 박중서 옮김

COD 1997년 출판

2014년 2월 28일 한국어판 발행

알에이치코리아

 

얼마 전 최재천 교수의 추천사를 받은 책 한 권이 재출간되었다. 정확히는 재재출간이다. 1997년에 나온 이 책은 1998년에 한국에 출판되었다가 절판되었는데 2014년에 완역하여 재출판되었다. 이번에 나온 책은 2014년에 나온 책을 다시 디자인하고 최재천 교수가 감수를 맡아 출판한 것 같다(번역자는 동일하다). 처음엔 재출간된 책인 줄 모르고 있다가 도서관 서가를 둘러보다 이 책을 발견하고는 호기심이 일어 읽게 되었다.

첫 출간이 1997년이라 이 책에 담긴 내용은 20세기 말까지로 한정된다. 거의 30년 전 이야기임에도 바로 현재를 다루는 듯한 생생함이 남아 있는데 그 이유는 책의 내용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왕을 중심으로 국가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거시적인 역사와는 별개로 한 품목의 역사를 추적하는 미시사는 아주 색다른 재미가 있는데 그 중 먹거리의 역사는 유난히 각별한 느낌이 든다. 사람은 매일 뭔가를 먹어야 하기에 그런 것 같다.

아무래도 저자가 미국인이라 대구의 역사도 대체로 유럽과 미국 중심으로 전개했다. 하지만 국민생선인 명태가 대구의 일종인 왕눈폴락대구임을 알게 되니 이게 단순한 서양의 생선 이야기로 보이지 않았다. 대서양에서 말 그대로 바구니로 퍼낼 정도로 너무 많아서 절대로 고갈되지 않을 거라 여겼던 대구가 너무 빠르게 줄어드는 바람에 상업적으로 멸종해 버렸다는 이야기는 기시감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21세기 들어 동해에서 많이 잡히던 오징어와 명태가 사라지고 이제 대부분 수입하고 있는데 같은 현상이 이미 20세기 말에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해졌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문제의 심각성을 차치하고 대구가 서양의 식문화와 얼마나 밀접한지 차근차근 접근하는 방식도 재밌고 무엇보다 비슷한 부류의 논픽션 서적에 비해 분량이 많지 않고 가벼운 편이라 읽는 데 부담이 없다. 중간중간 삽입된 옛날 서양의 대구 레시피도 읽을만 하다. 이 책을 읽다가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내용 일부가 갑자기 생각났다.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에서 게르다가 카이를 찾으러 가는 여정 중에 라플란드 할머니가 말린 대구에 편지를 써서 핀란드 여자에게 전해주라며 게르다에게 주는 장면이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게르다가 받은 대구편지의 정체를 알 것 같다. 분명 그 대구는 장대건조 대구였을 것이다.

 

'읽은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  (0) 2025.02.20
파견자들  (0) 2025.02.03
닉 레인의 저서들  (0) 2025.01.29
초가공식품  (2) 2024.12.23
알레르기의 시대  (2) 2024.07.22
And

퍼블리온

김초엽 지음

2023년 10월 13일 초판 발행

 

서사에는 구조가 있고 보통 이 구조는 책을 읽으면서 탐색하며 알아나가야 한다. 독서를 여행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문장으로 차곡차곡 뇌에 쌓아가며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는 과정은 여행과 닮은 면이 있다.

파견자들이라는 소설은 아주 낯선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처음 책을 펼치면 이게 어떤 세계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결국 책을 끈기있게 읽으면서 어떤 세계인지 천천히 탐색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초반은 지루하다. 1부, 2부, 연구일지,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에서 1부부터 연구일지에 이르는 300여페이지 상당수는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에 대한 이야기에 할애되어 있고 여기까지 잘 참고 읽어야 마지막 3부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구조이다. 소설치고는 진입장벽이 좀 높은 감은 있다. 사실 중간에 접을 뻔했다.

 

이전에 이 작가의 단편을 몇 편 접했을 땐 좀 애매했다. 나쁘진 않은데 그렇다고 좋다고 하기도 애매한 미묘한 구간에 걸려있었다. 그런데 이번 장편을 읽고서야 어떤 작가인지 대강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소설의 세계는 SF적 상상력으로 만들었지만 서사는 로맨스였고 SF물로서는 애매한데 로맨스물 관점에서 보니 재밌었다. 작가도 SF로 데뷔했고 작품도 대개 SF로 분류되는데 작품들을 엄격한 SF로 보려다 보니 어중간해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 이다. 로맨스에 SF스킨을 씌워놓았다고 여기니 그제야 작품이 제법 괜찮게 보였다. 한 사물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고 하는데 이 작품이 그러한 것 같다. 누군가한텐 지루한 내용이 될 수 있고, 하드SF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겐 어딘가 밋밋하고 모호한 작품이고, 로맨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신선하고 재밌는 소설일지 누가 아는가. 결론은 소설은 나쁘진 않은데 사람마다 취향은 많이 갈릴 것 같다는 것이다.

'읽은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  (0) 2025.02.20
대구  (0) 2025.02.12
닉 레인의 저서들  (0) 2025.01.29
초가공식품  (2) 2024.12.23
알레르기의 시대  (2) 2024.07.22
And

닉 레인은 영국의 생화학자이자 저술가이다. 석학이 대중 상대로 책을 쓰는 경우는 꽤 있고 명저라고 칭할 만한 책도 많지만 이 분의 저서들은 그중에서도 독보적이다. 공저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다섯 권을 냈는데 모두 다 숙고하여 읽을 가치가 있다. 다만 화학과 생물학 지식이 전무하면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과 학부에서 유기화학과 생화학을 1년씩 공부한 사람이 아니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기 곤란한 정도의 난이도라 권유하기는 좀 애매하고 책에서 다루는 범위가 생물학과 생화학을 벗어나 여러 학문을 넘나들기 때문에 광범위한 과학 지식이 없으면 이공계 전공자들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원래 어려운 건 어렵게 익혀야 한다고 한다. 이 정도 어려움은 스스로 극복해야 생명의 비밀에 다가갈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출간된 순서대로 책 정보를 나열해 보았다. 순서대로 읽어도 되고 관심 가는 것부터 읽어도 되지만 읽다보면 알게 될텐데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다루는 내용이 쉽지는 않기 때문에 계속 되새기며 읽어야 하고 읽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같은 주제를 각기 다른 관점으로 서술했다고 여기면 되는데 생물학이란 분야가 매년 새롭고 놀라운 연구가 쏟아져나오는 분야라 그런지 전혀 지루하지 않다. 어려워서 재미는 없을지 모르나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들만큼 흥미로운 내용도 없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글을 쓰다 보면 알게 모르게 글쓴이의 의중이 문장에 반영된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문장 사이사이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생각과 감정이 감동적이다. 책 전반에서 느껴지는 연구대상에 대한 진지함과 생명에 대한 애정 때문에 책을 찾게 된 것 같다.

 

 

산소

양은주 옮김

OXYGEN : The Molecule That Made The World 2002년 출판

2016년 10월 31일 한국어판 초판 발행 (뿌리와이파리)

이 분의 첫 저서이다. 무려 2002년에 처음 출간된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새롭고 놀랍다. 첫 출간일자와 한국어판 출간 일자 사이에 간격이 유독 많이 떨어져 있는데 중간에 한 번 출간되었다가 절판되고 다른 출판사에서 다시 새로 출간되었다.

원제에 세상을 만든 원소라고 아예 박아 놓았다. 과학자 치고는 대단히 자신만만한 제목인데 읽어보면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알게 된다. 왜 산소여야 했는가? 어떻게 산소가 세상을 만들었는가? 왜 금성과 화성에는 생명이 없는가? 외계생명체의 존재에 왜 회의적인가?를 일목요연하게 서술하고 있다. 생물학이 유전자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실제로 유전자 중심으로 생각하게 하는데 이 책은 유전자가 아닌 에너지의 관점에서 생명을 서술하고 있다. 20년도 전에 출간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읽어도 신선한 게 생명을 보는 색다른 관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다섯 권의 저서 중에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분의 책을 읽는다면 이 책을 제일 처음에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미토콘드리아

김정은 옮김

Power, Sex, Suicide-Mitochondria And The Meaning Of Life 2005년 출판

2009년 1월 23일 한국어판 발행 (뿌리와이파리)

산소 다음에 나온 책은 미토콘드리아이다. 산소 다음에 미토콘드리아인 이유는 미토콘드리아가 바로 산소호흡으로 세포의 에너지 공급을 전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가 세포에 편입돠어 공생함으로서 세균은 다세포 생물으로 진화할 수 있었고 미토콘드리아 때문에 생물인 결국 성을 분화해야 했다는 이야기를 아주 설득력있게 서술하고 있다.

 

 

생명의 도약

김정은 옮김

Life Ascending : The Ten Great Inventions Of Evolution 2008년 출판

2011년 3월 25일 한국어판 발행 (글항아리)

이번 책은 어려운 내용은 최대한 배제하고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는 느낌이 든다. 각기 다르지만 크게 보면 모두 연결되는 10가지 주제를 나름 가볍게 다루고 있는데 연구들을 정리해서 요약한 것 같기도 한다. 다섯 권을 다 읽지 못하면 이 책만 읽어도 될 것 같다. 생물학 교양서로 무난한 난이도라 만약 다섯 권 중 딱 한 권만 읽겠다면 이 책을 추천하겠다.

 

 

바이털 퀘스천

김정은 옮김

THE VITAL QUESTION : Why Is Life The Way It Is? 2015년 출판

2016년 7월 5일 한국어판 발행 (까치글방)

다섯 권 중 제일 어려웠다. 워낙에 다루는 범위도 넓고 폭넓은 과학지식이 없으면 전공자도 쉽지 않을 내용이라 생각한다. 어렵지만 도전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읽기를 권한다.

 

 

트랜스포머

김정은 옮김

TRANSFORMER : The Deep Chemistry Of Life And Death 2022년 출판

2024년 6월 10일 한국어판 발행 (까치글방)

제목이 트랜스포머라서 로봇영화가 먼저 떠오르겠지만 로봇은 안 나온다. 대학에서 전공과목으로 생화학 강의를 들은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회로. 생화학을 공부하면 반드시 외워야 하는 크렙스 회로. 시트르산 회로라고도 부르는 이 회로가 어떻게 발견되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차근차근 다루고 있다. 생화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그 분야의 발견에 대한 역사까지 상세하게 아는 건 아니고 과학사는 또 다른 영역이고 잘 몰랐던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꽤 재밌게 읽었다.

 

 

'읽은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  (0) 2025.02.12
파견자들  (0) 2025.02.03
초가공식품  (2) 2024.12.23
알레르기의 시대  (2) 2024.07.22
식인 달팽이  (0) 2024.05.10
And